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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살 돈도, 헬스장 등록비도 없어도 되는 운동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퇴직 후 한동안 저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걷기가 몸에 좋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서울 둘레길을 친구들과 함께 걷기 시작하면서, 걷기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직접 알게 됐습니다.

퇴직 후 공허함, 걷기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이유
퇴직 직후에는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루 종일 시간은 많은데 오히려 마음이 더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세 시간쯤 걷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 답답함이 절반은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이게 기분 탓만은 아닙니다. 걷기는 근육에서 이리신(Irisin)과 마이오카인(Myokine) 같은 호르몬 분비를 촉진합니다. 여기서 이리신이란 운동 중 근육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호르몬으로, 뇌 신경세포 성장을 돕고 인지 기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걸을수록 뇌가 젊어지는 물질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또한 걷기는 세로토닌(Serotonin) 분비를 늘려줍니다. 세로토닌이란 기분과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부족해지면 우울감과 불안이 커집니다. 걷기만 해도 이 수치가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는 꽤 오래전부터 축적돼 있습니다(출처: PubMed Central, Exercise and the Brain).
"걷기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건 좀 과장된 말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처음에 그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걸어보니 반복적인 걸음의 리듬 자체가 머릿속을 비워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것만으로도 뭔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이리신(Irisin): 근육 운동 시 분비, 뇌세포 보호 및 인지 기능 향상
- 세로토닌(Serotonin): 기분 안정과 우울증 예방에 핵심 역할
- 멜라토닌(Melatonin): 수면의 질을 높여 전반적인 피로 회복 지원
- 엔돌핀(Endorphin): 통증 완화, 긍정적 감정 강화
혼자 걷는 것과 함께 걷는 것, 사회적 교류의 힘
걷기 운동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칼로리 소모나 심폐 기능을 먼저 떠올립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울 둘레길을 다니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의외로 마음 상태였습니다.
퇴직 후에는 직장 동료들과의 자연스러운 일상 교류가 사라집니다. 이 공백이 생각보다 큽니다. 저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월 1회 이상 함께 걷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걷는 두세 시간 동안 오가는 대화가 그 어떤 치료보다 마음을 채워줬습니다.
사회적 고립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은 치매 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출처: NIA, Social Isolation and Dementia Risk). 함께 걷는 것은 운동과 사회적 연결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혼자 걷는 게 더 자유롭지 않냐"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를 번갈아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느낍니다. 혼자 걸을 때는 생각을 정리하고, 함께 걸을 때는 관계를 충전합니다. 어느 쪽도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연 속 걷기, 힐링 효과를 제대로 얻으려면
실내 러닝머신과 야외 걷기 중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운동 효과 자체는 비슷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자연 속 걷기가 주는 정신적 효과는 러닝머신이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둘레길을 처음 걸었을 때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 멀리 보이는 서울 시가지 풍경, 흙길을 밟는 느낌이 도심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감각이었습니다. 공원이나 숲길의 신선한 공기는 비타민 D 합성을 촉진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수치를 낮춰줍니다. 코르티솔이란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반응 호르몬으로, 만성적으로 높으면 면역력 저하와 수면 장애로 이어집니다.
걷기 자세에 대해서도 짚고 싶습니다. 바른 자세로 걷지 않으면 오히려 척추와 관절에 무리가 갑니다. 시선을 5~6미터 앞에 두고, 턱을 지면과 평행하게 유지하고, 어깨 힘을 빼는 것. 이 세 가지만 신경 써도 나머지 자세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또한 걷기 중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은 경추(목뼈) 디스크 압력을 크게 높입니다. 목을 15도만 숙여도 경추에 가해지는 하중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걸을 때 스마트폰 대신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듣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목 통증이 확연히 줄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하루에 몇 보를 걸어야 치매 예방 효과가 있나요?
A. 만 보가 이상적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빠른 걸음으로 6천에서 7천 보만 걸어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최소 4천 보만 걸어도 치매 위험이 약 25% 줄어든다고 하니, 무조건 많이 걷는 것보다 꾸준히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매일 만 보를 채우려 욕심 부리다 지쳐 포기한 경험이 있어서, 지금은 부담 없는 목표부터 시작하는 편을 권합니다.
Q. 걷기와 달리기 중 어느 게 더 건강에 좋나요?
A. 칼로리 소모 면에서는 달리기가 앞서지만, 고관절이나 허리에 문제가 있는 분들에게 달리기는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관절에 이상이 없다면 걷기와 달리기를 번갈아 하는 인터벌 방식이 운동 효과를 높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우엔 무릎 부담을 고려해 걷기와 슬로우조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Q. 걷기 모임은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A. 동네마다 주민센터나 구청에서 운영하는 걷기 동호회가 꽤 활성화돼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둘레길 모임", "산책 동호회"로 검색해도 지역 모임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지인 몇 명과 직접 월 1회 모임을 만든 것이 오히려 더 오래 지속되는 방법이었습니다.
결 론
걷기가 몸에 좋다는 말은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걷기의 진짜 가치는 몸 바깥에 있었습니다. 공허했던 퇴직 초반을 버티게 해준 것도, 오랜 친구들과 다시 가까워진 것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보게 된 것도 모두 걸으면서 얻은 것들입니다.
이리신, 세로토닌, 코르티솔, 마이오카인 같은 호르몬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결국 핵심은 단순합니다. 운동화 신고 밖으로 나가면 됩니다. 처음에는 짧게, 혼자라도, 동네 공원이라도 괜찮습니다. 거기서 시작해 조금씩 거리를 늘리고, 마음 맞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데리고 나가면 걷기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렇게 월 1회 모임을 만들었고,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